* 디에퀸시 실험체X연구원 AU



세상의 온갖 특별하고 희귀한 것들은 아름답다. 인간이니 동물이니 자연이니 하는, 흔해빠져 세상에 널린 보통의 아름다움보다 빛난다. 평범한 것들의 곱절은 더 아름다운 그것들은 인과 덕을 갖춘 성인들이 보기에도 참을 수 없이 탐날 게 분명했다. 일렬로 늘어선 플라스크들이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춘다. 평소 같은 얼굴, 이라고 한다면 평범한 얼굴. 다른 때보다 거칠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시기니까.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내야 하는 시기니까. 디에고의 몸은 날이 가면 갈수록 차갑고 거칠어져 간다. 맨 앞에 놓인 플라스크 앞에 고개를 들이밀고 플라스크에 비친 나와 시선을 맞추다 부드럽게 뺨을 쓸어본다. 아직 부드러운 손끝에 걸리는 거친 피부들. 딱딱해진 디에고의 가죽을 처음 만졌을 때도 이런 느낌이 들었던가.

어쩌면,

나도 디에고를 닮아가는 걸지도 몰라.

닮아간다는 건 변화로 인한 고통이나 시간까지도 공유한다는 것. 더욱 깊어진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더 깊어져야 디에고를 놓아줄 때 내가 덜 아플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한다. 플라스크에 새겨진 눈금의 개수를 전부 셀쯤엔 답이 나온다. 그래. 아직은 너보다 내가 더 소중해. 너를 위해 날 희생하고 싶지 않아. 그거면 된 거라는 결론과 함께 사실은 아직도 무거운 마음을 고개를 두어 번 끄덕여 털어낸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결론도,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겨우 털어내고 숙였던 허리를 편다.

 

퀸시.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나를 다정하게 부르는 사람, 무슨 말을 하든 디폴트가 퀸시인 실험체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 이름을 부른다.

어김없이.

퀸시, 하고.

누구보다 거친 네가 누구보다 말랑하게.

너 때문에 내 디폴트도 네가 됐는데 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기만 하다. 말랑하니까 으깨지는 것도 두렵지 않은 걸까. 으깨지지 않고 지그시 뭉개져서,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부풀어 돌아올 테니까. 몇 번 안고 만지는 걸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갔던 탓인지 스킨십이 과해진다. 허리를 끌어안고 내 이름을 부르면 나는 항상 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걸 학습한 디에고가 자연스레 고개를 기울여 시선을 맞춘다.

그리고 한 번 더,

말랑하게.

 

퀸시. 일은 다 끝난 건가? 기다렸다고, 더 기다리게 할 셈은 아니겠지.

대답보다도 먼저 해야 할 건 허리를 안은 디에고의 팔에 손을 올리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버석하고 거칠어진 피부를 더듬으며 다 끝났어, 하고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어제보다 더 딱딱해지고 균열이 생긴 탓인지 피부 결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역방향으로 쓰다듬으려니 가죽에서 떨어져나온 잔부스러기가 손안에 담긴다. 디에고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잽싸고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주머니 속의 공병에 부스러기를 털어 넣으면 오늘 하루해야 할 검사와 수집은 끝이 난다. 며칠 전만 해도 대놓고 디에고의 허락을 맡은 후 가죽을 만지고, 일부를 떼어냈었다. 이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떨어져 나가는 살점을 바라보는 디에고의 표정을, 도저히 헤아리고 떠올려봐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막연히 안쓰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몰래 떼어내고 근무시간 외의 시간까지 디에고로 채워 넣으며 자연스럽게 기분이나 증상에 대해 알아갔다. 디에고의 팔을 풀어내고 앞서 걷는다. 혹시 이거 좀 위험한 건가 싶다. 우리의 관계에 대한 오만가지 걱정과 시선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두 번 끄덕인다.

좆됐네, 라는 의미로.

현실을 털어내며.

 

'MAD MONST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sy neighbors-1  (0) 2020.01.28